서울역에서...

Diary Posted at 2005. 11. 3. 19:45
남대문으로 출근한지 2달이 조금 넘었다.

그래서 4호선 서울역에서 내려 1Km 가 조금 안되는 거리를 걸어다니는데 그 거리의 반은 1/4호선 서울역사 지하도 안을 걷는 것 같다.

이때 IMF 이후에 많아진 서울역 노숙자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어떤 분은 길을 막으시고 라면 한 그릇 사 먹을 돈을 요구하시는 분도 계셨고 - 대부분의 노숙자 분들의 행태가 그렇지만 - 역사 안에서 소변을 보시는 분, 주무시는 분, 지나가는 행인을 물끄러미 쳐다 보시는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노숙자분들이 서울역 주변엔 많다. 특히 요즘 같이 추워지는 때에는 지하도 안을 거의 가득 메운다고 봐야 한다.

그런 노숙자들 가운데서 노숙자와 행인간에 마찰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약간 다른 형태의 마찰을 경험했다.

노숙자 분들중에서도 연세가 좀 지긋해 보이는 노숙자 한분이 지하도 내에서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당연히 행인들의 눈초리는 그분에게 몰리고...

그 가운데서 그 노숙자 분의 연배로 뵈는 할아버지 한분이 그 분에게 다가가셨다.

한말씀 하시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할아버지는 바지춤에서 담배 한갑과 천원짜리 몇장을 꺼내주시면서 그 노숙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춥죠? 자 이거도 태우쇼."

입에는 여전히 타고 있는 담배를 물고 담배 한갑과 지폐를 한손으로 쥔채로 할아버지를 올려다 보는 노숙자 분에게 그 할아버지는 이 한마디를 더 남기시면서 가시던 길로 발걸음을 돌리셨다.

"왜 지하도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지 나도 모르겠는데 다들 그렇게 한다니깐 담배 태실때 마다 나 생각하구 요 위에 올라가서 태우쇼. 난 괜찮은데... 다른 사람한테 봉변당해요."

노숙자 분에게 이 말씀을 하시며 손을 휘 저으시는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하루종일 잊혀지지 않았다.

거리의 노숙자 분들에게 동정을 줄것이냐 아니면 완전히 사회에서 몰아내야 할 것이냐를 따지기 전에 그 분들을 같은 인간으로 대하는 그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얼마나 인간답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얼마나 따스하게 보내고 있는 지...

나에게 질문하게 된다.

따뜻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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